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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2020년 제27호: 냉전의 최전방에서 평화의 섬으로- 대만 진먼도의 경험과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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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 BRIEF

    No.27 (2020. 07. 15.)

     

    민주주의와 평화, KOREA CONSENSUS INSTITUTE

     

    냉전의 최전방에서 평화의 섬으로:
    대만 진먼도의 경험과 시사점

    김 수 한 (인천연구원)


    냉전과 동아시아의 열점(熱點) - 진먼도

    판문점 남북정상 회담이 있었던 2018427일 북·중 접경인 단둥에서 지역조사를 하고 있었다. 접경의 연결과 접촉 기능에 주목하며 희망찬 기대가 넘쳤던 당시와 달리, 중국-대만 접경인 진먼도(金門島)에서 맞은 6·15 20주년의 한반도 상황은 우려와 걱정이 앞섰다. 접경에서의 삐라 살포와 남북 당국 간의 날 선 공방, DMZ 경계초소의 재설치 위협 그리고 개성남북연락사무소의 폭파.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접경지역은 갈등과 충돌이 지배할 경우 분리와 단절을 의미한다. 하지만 협력과 화해의 여건 속에서는 접촉과 연결지대 역할을 하게 된다. 타이완 본섬으로부터 210떨어져 있는 대만의 최전방인 진먼도는 이 같은 접경의 이중적 성격을 모두 경험한 곳이다.*1


    일본 침략에 맞서기 위해 일시적으로 손을 맞잡았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은 일본이 패망한 1945년에 곧바로 내전에 돌입한다. 연패를 거듭한 장제스의 국민당군은 타이완으로 퇴각하면서 중국 동남부 푸젠(福建) 연해 섬인 진먼도에 방어선을 구축한다. 전열을 가다듬어 가까스로 중공군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 진먼은 1950년 한국전쟁, 1954년 미국·대만방위조약의 체결 등에 이은 본격화된 냉전의 소용돌이에서 8바로 눈앞의 이웃이었던 중국 샤먼(夏門)과 서로 총구를 겨눈 채, 대만의 최전방이자 반공 진영의 첨병이 되었다.

     


    섬 전역의 요새·병영화와 아빙커(阿兵哥) 경제

    진먼 섬 전역이 빠르게 요새화되었다. 군사령관을 정점으로 한 전 사회의 병영화 역시 신속히 추진되었다. 주민들은 모두 민방위대로 조직되었다. 각 촌에는 정치지도원이 파견되어 주민들의 동원, 교육, 감시를 담당했다.


    소금기 많은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주로 근해어업, 재래식 염업 및 굴 양식 또는 외지 노무와 무역으로 삶을 일구어 가던 진먼 사람들. 해변 접근이 금지되고 인구 이동 및 외부와의 교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전통경제를 대신하여 10만 명에 달했던 군인을 상대로 한 서비스업 즉, ‘아빙커(阿兵哥: 군인아저씨) 장사가 성행했다.

     


    접경자산을 활용한 진먼의 명소화(名所化)

    탈냉전의 세계적 흐름 속에서 진먼 사회의 변화가 일어났다. 하루 걸러 홀숫날 어김없이 날아들던 중국의 포탄이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멈춰졌다. 양안 간 긴장도 누그러졌다. 1987년 타이완 본섬에 이어 1992년 진먼 역시 계엄령이 철폐되었다. 군축이 시작되고 중앙정부 지원 역시 줄어들었다. 진먼은 급변하는 여건에서 접경으로서 갖고 있는 고유의 지역자산을 활용,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유명 전장과 폐허가 된 군 시설은 승전을 기념하는 동시에 반전과 평화를 염원하는 장소로 재정비되었다. 민간인 통제 지역이었던 탓에 개발이 지체되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원형이 보존된 푸젠 전통의 유무형 역사·문화 자산과 자연생태계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미지의 접경이었던 진먼은 평화의 섬으로 탈바꿈하고 명소화되었다. 2001년 진먼-샤먼이 양안교류·협력 선행 시범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진먼도의 접경 연결 기능이 부활하였다. 2001년부터 20202월까지 진먼을 통해 중국 대륙을 오간 사람은 2천만 명을 상회한다.


     

    양안 갈등과 진먼의 완충 역할

    진먼의 전통 역사문화는 분단된 양안 간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고 있으며, 보존된 자연생태는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의 장소성을 확산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분단되었던 중국의 인접 도시들과 사회·문화적 생활권을 회복하면서 진먼의 접경 연결 기능이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민진당 집권 때마다 양안의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먼-샤먼 간의 교류는 중단되지 않고 확대되고 있다. 진먼이 중국과 구축한 다층적 관계망은 악화된 상황을 완화하고 관계를 보다 빨리 복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





    진먼의 경험과 시사점 - 접경협력을 통한 상향식 평화 과정 필요

    이처럼 중국 샤먼과 마주 보고 있는 대만의 최전방 군사요충지 진먼은 탈냉전의 흐름에 발맞춰 분단된 양안을 잇는 가교이자 평화의 섬으로 변모하였다. 이 같은 진먼의 변화 원인을 단순히 국제정세 등 외부환경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접경으로서 갖는 지리와 경관 등 장소의 물리적 특징, 역사·문화, 생태 등 고유의 장소자산을 활용한 지역 차원의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이고 점진적 과정인 통일과 평화 프로세스는 반드시 중앙정부의 체계적인 전략과 지침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하향식 정책과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진먼의 경험에서 보듯이 지역 고유의 자산을 활용한 내생적이고 창의적인 상향식 평화 과정 역시 중요하다.


    20184·27, 9·19 회담을 통해 남북 정상은 DMZ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조치와 서해경제특구, 동해관광특구 등 일련의 접경 협력 구상에 합의하였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재개되고 접경 협력의 중요성에 주목한 이 구상의 실질적 진전과 내실 있는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역 고유의 평화자산에 대한 발굴과 활용, 접경지역 차원의 창의적이고 선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냉전시기 동아시아의 열점(熱點)에서 평화의 섬으로 거듭난 진먼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다. 진먼의 경험과 성취를 곱씹어 그 속에서 복잡하게 얽힌 남북관계의 실타래를 풀 작은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국명은 각각 중국과 대만으로 약칭하며 타이완, 진먼, 푸젠, 샤먼, 등 대만과 중국의 지역명은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한다.